생전에 여길 직접 가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인연이라고는 밀덕 시절 남들이 안하는 걸 해보고자 이스라엘 군장에 손을 대보려했으나...도대체 이것들은 모든 디자인 감각은 무시하고 실전으로만 밀어붙이는 것들이다 보니 시작만 살짝 해보고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었다.


때는 3월 초, 수출팀 여직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시회 다음주에 특별한 일정있냐고. 독일에서 하는 전시회에 참가하지 않기에 그 다음주에는 별다른 일은 없었다. 다만 전시회에 팀장이 참석하기에 그 주 동안은 겁나 바쁠 거라는 예상 정도만 하는 중.

'저랑 이스라엘 가셔야해요.'

'뭣이라???'


사실 연초에 작년 연말에 있었던 클레임 건으로 이스라엘 출장 이야기가 있었으나 해가 바뀌고 수출 담당자도 바뀌고, 이메일로만 주고 받는 통에 의사 소통은 잘 안되고 이런저런 이유로 지연되던 중 마지막으로 나온 대안이 정 해결 안되면 독일 와이어쇼에 갔던 인원 중에 몇몇이 전시회를 마치고 이스라엘에 들렀다오는 쪽으로 하자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나온 것은 1월인가 2월이었고, 전시회는 4월초. 두달이 넘는 기간을 기다려야한다는 것에 거래선에서 너희가 우리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며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가 조용해졌다.


까먹고 있었는데 이게 또 뭔 날벼락???

'전시회 간 사람 많잖아? 거기 이 공장 QC팀장도 있고(이분은 올해 이 공장으로 발령받아 와서 아직 잘 모르긴 하다만), 한때 기술 영업하던 사람도 있는데 날 왜???'

'QC팀장은 목요일 귀국이구요, 다른 분은 금욜 귀국이라 토, 일요일이 뜨기 때문에 안된데요.'

'어이, 나 같음 그냥 거기 있다가 이스라엘 들렀다 오라 하겠다. 독일에 이틀 머무는 비용이랑 비행기 값 합쳐도 여기서 내가 따로 가는 것보다는 쌀텐데?'

'일단 아무일 없으시니까 차장님 가시는 걸로 할게요.'

ㅡㅡ;;;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GO 사인이 떨어졌다, 젠장.

내가 젤 걱정한 것은 비행기를 열시간 넘게 타야된다는 거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한항공 직항 노선이 있긴 한데 사실 두바이인가 홍콩에서 환승할 수 있다는 노선이 더 땡겼지만 그게 내 맘대로 되진 않으니까.

이스라엘 인들조차 대한항공 직항이 있다니 놀라는 눈치였다.


그렇게 4월 9일 출발, 13일 귀국 일정이 잡혔다. 정확히는 12일 23시 출발이라 도착이 13일이다.

부산 -> 인천 -> 텔아비브로 이어지는 일정으로 올 때는 그 반대.


사실 난 별로 걱정도 안하고 준비도 그닥 안하고 있었는데 비행기표만 끊은 상태에서 수출팀의 사고뭉치가 계속 겁을 주는 거였다. 입국심사가 겁나 까다로우니 준비 단단히 해야한다며 따로 보여줄 출장 일정표도 만들어 두라고.

그 때믄에 검색해보니 입국심사가 이것저것 물어보고 제대로 대답 못하면 어디로 끌려가서 한시간씩 조사당한다는 거다. 어머니와 함께 여행갔던 어떤 사람은 자기는 잘 지나왔는데 어머니가 영어를 한마디도 못해서 끌렸갔다고. 자기가 가서 다 설명을 했더니 왜 영어를 한마디로 못하냐고 오히려 화를 냈다던가?

개인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해 알게되면서 점점 안좋은 인상이 박혔다.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긴 한데 입국심사 이야길 보니 그때 생각이 더 났다.

여튼 그렇게 4월 9일 출국했고, 자다 깨다 음악 듣다 영화 보다가 책 좀 보다가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심사하는 곳은 단촐했다. 사각형의 부스에 한명씩 앉아서 입국하는 사람을 맡고 있었다. 현지 시간으로 저녁 9시 도착인데 딱히 사람이 많지도 않았고 내 앞에 먼저 간 사람들이 그렇게 오래 걸린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내 차례.

간단한 인사를 건내고 여권을 들이밀었다. 이스라엘에 입국할 때는 따로 입국 카드를 적진 않는다.

질문은 대략 이랬다.

'뭐하러 왔나?'

'몇일 있을 거냐?'

'어디서 묵나?'

등등 특별한 질문은 없었다. 사실 입국 심사 중에 가장 당황했던 것은 예전 일본 니이가타에 입국할 때였다. 프로젝트 때문에 1년에 한번인가 두번을 가다보니 점점 익숙해질 무렵 인상 좋게 생긴 아저씨가 처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일본 입국심사에서 질문을 받아본 거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입국심사할 때 입국카드에 묵는 호텔을 적지 않아 다시 적으라고 할 때도 말이 아니고 손으로 가르키는 정도였다. 그거 말고는 도쿄에 도착한 날이 중국에서 누군가 중요한 사람이 온다고 입국검사 다 거쳐서 나오는데 세관 검사 한다고 상의 벗어보라고 한 정도? 그 뒤에 두어번 니이가타를 더갔는데 그 아저씬 못봤다.

질문 던지는 거 말고는 전형적인 입국심사의 그것.


준비해간 출장 일정표 따위 보여줄 필요도 없이 그냥 통과.

비자는 도장을 찍어주지 않고 내 얼굴이 인쇄된 하늘색 티켓 형태의 것을 준다. QR 코드가 찍혀있는데 입국검사대 뒤에 개찰구 같은 게 있다. 거기에 그 비자의 QR 코드를 대면 문이 열리고 아래로 내려가는 엄청나게 넓은 길이 나온다.

짐 찾고 나가면 된다. 세관 신고서도 따로 없다.


뭐 영어만 하면 되잖아? 별거 없네?


이렇게 쉽게 생각한 내가 출국 과정에서는 좀 당황했다.


12일 오후 2시 조금 안되어 벤구리온 공항으로 돌아왔다. 내가 탈 비행기는 밤 11시라 미리 올 필요가 없었지만 일정은 오전 11시 반인가 끝나버렸고 사고뭉치가 오후 4시 터키로 가는 터라 혼자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냥 같이 공항으로 왔다.

막 공항으로 들어가려는데 20대 정도로 되어보이는 젊은 남자가 웃으면서  자기는 보안요원이라고 소개하며 우리 앞을 막아섰다.

대략 이런 질문을 했다.

'혼자냐? 둘이 같이냐?'

'어떻게 아는 사이냐?'

'어디 가는 길이냐?'

'몇일이나 있었나?'

등등의 질문.

이 요원은 웃으면서 대했기에 분위기도 괜찮았고 사고뭉치도 웃으며 대답해서 난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 그냥 넘어갔다.


3 터미널의 3층으로 도착했는데 사고뭉치가 타고갈 터키 항공이 보이지 않았다. 물어보니 1층으로 내려가라고. 1층으로 가니 터키 항공이 있긴 한데 4시 비행기라 2시부터인가 체크인이 된다하여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3층에는 출국장 밖에 보이지 않아 아무 것도 없어보이는 2층은 건너 뛰고 1층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입국장 중앙은 말 그대로 입국한 사람이 나오는 곳이고, 좌우로 뭔가 시설이 있다. 우측에 작은 카페가 있고 벽쪽으로는 특별한 게 없고, 좌측으로 가면 같은 카페가 하나 더있고, 빵집, 과자 가게 등 조그만 가게 몇개가 있었다.

명색이 국제 공항이 뭐 아무것도 없어? 그렇다고 체크인이 안되니 안에 들어갈 수도 없고 해서 카페에 앉아 딱히 맛도 없는 샌드위치와 샐러드로 식사를 대신했다.


사고뭉치가 체크인을 위해 카운터로 들어서고 난 옆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두리번거리는 사이 녀석이 사라졌다. 동양인은 거의 눈에 띄지도 않는데다 핑크색 캐리어라 눈에 확 띄는데 없어졌다.

한참을 두리번 거리다 카운터 앞에 서있는 엄청난 사람들의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설마 싶어 가보니 그 끝에 있었다. 보안검색하고 들어와야한다고 해서 왔다고.

네명 정도의 보안요원이 사람들을 인터뷰 중이었는데 항공사 카운터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이유가 인터뷰 거쳐서 들어오다 보니 그런거였다.

그러고 보니 다른 카운터는 다 3층에 있는데 1층에 터키, 호주,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3개 항공사만 따로 있는 게 신기했다. 이 셋이 이 공항에서는 제일 많은 편수가 있지 않나 싶다.


혼자 서서 두리번 거리는데 또 다른 보안요원이 다가왔다. 아까보다는 태도가 좀 딱딱했다.

유사한 질문이었는데 어느 지역을 다녔는지를 추가로 물었다. 텔아비브 말고 다닌 지역의 이름을 아예 알지를 못하니 결국에 출장 일정표를 내밀었다. 그런데, 거긴 회사 이름만 써져있지 지역은 써져있지 않다.

다행히도 잘 넘어갔고, 흔하지 않은 동양인이 눈에 띄어서 그러나 싶어 카페 옆의 사람들이 많은 쪽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사고뭉치를 보내주고, 아까 앉았던 카페에서 라떼를 한잔 사서 첨에 샌드위치를 먹었던 카페로 돌아갔다. 라페를 파는 카페는 특이하게 살 때 이름을 물어본다. 음료를 내어줄 때 이름을 부르며 건네준다. 진동벨 대신인가?

다시 반대 카페로 간 이유는 이쪽은 항공사 카운터 옆이라 그런지 자리가 별로 없고 시끄러웠다.


한두시간 정도 보고서 미리 좀 쓰고, 술마시고 잠 못 이루는 친구놈이랑 톡질 좀 하다보니 6시가 넘어 저녁 먹을 거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체크인이 어찌되나 싶어 3층으로 다시 갔는데 카운터는 열 기미도 없었고 정보 검색을 할 수 있는 검색대에서 식당을 검색했다.

여기서 함정이 있었던 걸 발견했다. 3층 출국장을 정면으로 보면 그 유명한(유명한 거 맞나?) 촛대가 보이고


뒤로 긴 통로가 있어 보안검색장 입구가 보인다. 들어가면 끝이라고 생각해 안들어갔는데 통로 끝에 공간이 있어 보안검색장 입구 양 옆으로 매장들이 있었다.

식당을 기대하고 들어갔으나...간단한 매장들(기억나는게 약국, 음반, 과자, 사치품 몇가지 등등)과 피자헛...빌어먹을 식당은 없고 1층처럼 간단한 샌드위치, 샐러드 등을 파는 카페가 3개인가 있었다.

도대체가 식당은??? 피자헛도 정식이 아닌 그 익스프레스 매장 같은 거.


나중에야 기억났는데 2층에 Buy & Bye라는 데가 있었는데 못가봤다. 뭐하는데인지 궁금했는데.


결국에 저녁도 그닥인 샌드위치로 떼우고 저녁 8시가 되어서야 체크인을 위해 갔다.

3시간 전 체크인 시작이니 널널할 줄 알았는데, 아니 그래도 붐비진 않을 줄 알았는데 이 엄청난 줄이란??? 이럴 줄 알았음 미리 와서 줄이라도 빨리 설 걸.


1층보단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4명 정도가 일반 승객을, 2명이 비지니스 등급 이상과 단체 승객을 받는듯 했다.

거의 40분 정도 줄을 섰을까 내 차례가 왔다.

기본적인 질문은 비슷했는데 짐에 대한 질문이 추가됬었다.

'짐은 어디서 누가 쌌나?'

'짐은 누가 운반했나?'

'짐 속에 칼 같은 게 들었는가?'

'짐 속에 액체는 없는가?'

질문 중에 캐리어랑 캐리온이랑 헛갈려서 '테러나 범죄 위험에서 안전하기 위한 조치이니 잘 협조하라는 짜증 섞인 말'도 한마디 들었다.

여권에 비자가 얼마나 있는지도 한장한장 넘기며 살핀다. 작년에 전자여권으로 새로 발급하고 와이프랑 일본 여행갈 때 받은 거 한장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끝까지 한장한장 넘기며 살핀다.

다 끝내고는 바코드를 뽑아 캐리어 손잡이에 감아준다.


체크인을 하고 보안검색대로 갔다.중앙 통로가 넓어 그냥 가려했는데 누가 날 부르더니 여권을 확인하고는 왼쪽으로 서란다. 자세히는 못봤는데 중간은 그냥 지나가는 것 같고, 좌우로 검색대가 있는 것 같았다.

금속탐지기를 통과하는 방법은 똑같았다. 유럽 쪽으로 오면 항상 하는 허리 띠 풀라는 것만 추가된 정도.


시계 찬 거랑 핸드폰이랑 허리 띠까지 몽땅 빼서 금속이라고는 없으니 금속탐지기를 통과해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제 끝났거니 하는데 키작은 한명이 나를 부른다. 짐 앞으로 가니 확인하고는 여권과 비행기 표를 함께 받아 번호가 표시된 함에 넣고는 따라 오라고 하고는 영어가 가능한지 확인하고 발판에 발을 올리라며 자기 발을 올려보인다. 발을 올리니 운동화 전체에 끝에 동그란 흰색 부속품이 달린 검은 막대기를 운동화에 대고 훑는다. 흰색부분으로 훑는데 반대쪽까지 다 하고는 그걸 뒤에 있는 기계에 집어넣는다.

IONSCAN 500DT라는 이름이 눈에 확 들어왔다. 뒤에 검색해보니 방사능이나 화약 같은 흔적 검사하는 기계라고.

신발이 끝나자 나온 배낭이랑 노트북이 내것이 맞는지 확인한다. 맞다고 하자 일단 배낭의 바깥면을 아까 그 막대기로 훑는다. 다음은 배낭을 열어달라고 하더니 안을 훑는다. 배낭 안 각각의 지퍼도 다 열어보고 차근차근 훑는다. 배낭이 끝나자 노트북으로 넘어간다. 바깥 먼저 하고는 열어서 키보드랑 모니터까지 다 훑는다.

다 끝나자 여권을 돌려준다. 첨엔 몰랐는데 여권에 노란색 바코드가 붙어있다. 아까 보안 검색할 때 붙인 모양이다.


이제 출국심사. 또 뭘 물어보려나 지쳐있는데 밖에서 보기에 분위기가 좀 달랐다. 외국인 용으로 두개가 열려있고, 안에 여자가 앉아있었는데 둘이 잡담 중인 것 같았다.

내 차례가 되어 뭘 물어보려나 하고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데 쉴새 없이 떠드는데 영어가 아니었다. 암만 봐도 두 박스 사이에 난 작은 창으로 둘이 떠드는 중이었다.

출국심사는 허무하게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냥 끝났다. 뒤로 가니 입국심사 때처럼 QR 코드를 대고 지나가는데가 있었다. 안에 있던 티켓을 찍고 나왔다. 그땐 들어올 때 받은 거로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비행기에 들어가서 뒤적이다 보니 들어갈 땐 하늘색, 나올 땐 핑크색으로 두장이었다.

들어가며 보니 입국할 때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벽에 붙은 사진은 이스라엘 출신의 유명인이었다. 아인슈타인만 기억난다.

도착한 곳은 면세점. 특이하게 중간에는 카페 등과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곳이 있고 원형으로 삥 둘러서 면세점들이 있다.

면세점은 특별한 것이 없고, 기념품 가게가 하나 있긴한데 이거 뭐 다윗의 별 이런 거나 팔고 있으니 도무지 눈에 들어오는 것고 없고.

밀덕이라면 특이하고 아무데서나 구할 수 없는 것이라 슬쩍 눈이 가긴 하지만 디자인으로 봐서 도저히 손이 가지 않는 티셔츠를 구경하고, 회사 동료들 회식때 쓸 이스라엘 술 한병을 하고는 이스라엘 출장을 끝냈다.


사족인데 김해에 도착해서 검역소를 통과하는데 이스라엘 다녀오셨네요 하면서 쪽지를 건낸다.

처리가 빠른 건지 공항에서 짐이 늦게 나와 미적거리는 중에 질병관리센터라며 문자도 온다.

Posted by 나막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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